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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자의 복(마 5:9)090313
글쓴이 : 김근중     날짜 : 09-04-27 11:47     조회 : 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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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자의 복(마태복음 5: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밤에 우리가 생각할 말씀은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 가운데 일곱 번째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가 무너지자 많은 사람들은 지구촌에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전쟁들이 더 많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민족주의의 발흥과 돈을 둘러싼 전쟁 등은 온 인류를 슬픔에 젖게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바라고 있지만 전쟁만이 가득 찬 세상으로 바뀌어 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창출하고 전파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 중에 일곱 번째 복이 평화에 관계된 복입니다.
‘화평’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부르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피스’(Peace)란 단어인데 우리말에는 화평, 평화, 평강, 평안, 화목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만날 때도 ‘샬롬’이라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에도 ‘샬롬’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이처럼 각국의 인사말은 그 나라의 환경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영국은 날마다 비가오고 안개 끼는 날이 많으므로 좋은 아침을 기대하며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합니다.
한국은 과거에 굶는 사람이 많아서 “진지 잡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생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전쟁이 많아 바벨론, 시리아, 앗수르, 애굽 등의 나라들이 끊임없이 쳐들어와 전쟁이 그치는 날이 없었기에 “샬롬”이라고 인사하며 평화를 기원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Jew)하면 지독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심어져 있는데 이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지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유대 민족을 힘으로 구원하여 평화를 가져다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서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어의 ‘3P’라는 말이 있는데 ‘인내’(patience), ‘실천’(practice), ‘평화’(peace)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중단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 실천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평화스러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운전을 해도 평온한 마음으로 해야만 안전하게 운전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면 사고가 납니다.
특히 창작 작업은 마음이 평온해야 불량품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주부들이 화평한 마음으로 아이를 양육해야 건강하고 튼튼하게 바랄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도 그렇습니다.
50%의 자기의 고집을 꺾고 살아야 가정이 화평합니다.

모든 일에 화평은 중요합니다.
성경은 화평을 원하는 자가 아니고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에이레네 포이오스’인데 ‘에이레네’는 ‘평화’이고 ‘포이오스’는 ‘행하는 자’입니다.
즉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 maker)라는 말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능동적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화평에는 어떤 종류의 화평이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평, 형제들 간의 화평, 그리고 모든 인류와의 화평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화평을 만들어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하지 않고서는 형제간의 화평도, 인류와의 화평도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화평이 중요하면서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에 성경은 로마서 5장 1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화평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 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타락하기 전 인간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는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신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창세기 3장 8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으니라”

타락한 인간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불화했습니다.
죄는 인간을 불화하게 만듭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커다란 장벽을 만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보이지는 않는 장벽을 만들어서 화평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하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평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해진 사람은 마음이 온유해지고 의를 목마른 자가 물을 사모하는 것과 같이 사모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한 마음으로 보게 되며 그런 사람의 마음은 청결하게 됩니다.
마음에 근심이나 걱정이 없고 양심의 불안이나 정욕이 없게 되므로 안정된 마음, 조용한 마음, 잔잔한 갈릴리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에는 악한 사람의 마음은 정함도 없고 평화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화평을 위해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불화의 근본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까닭입니다.
모든 불화의 근본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입니다.
마음의 불안도 죄에서 오고 가정의 불화도 죄에서 옵니다.
사회의 불화도 죄에서 오고 국가 간의 분쟁도 죄에서 오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과 진정한 화평이 성립될 때 우리의 마음에도 평화가 오고 가정에도 평화가 오고 사회와 국가에도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주신 것이 평강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숨을 내 쉬며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는데 역시 마음의 평안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우리에게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2. 형제간의 화평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들은 이제 믿는 형제들끼리의 화평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형제간의 화평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시편 133편 1절에서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형제간의 화평한 관계에 대하여 시편 133편 2-3절에서는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헬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하였습니다.
형제간의 평화를 위해선 싸움을 붙이지 않도록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16장 28절에 “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8장 6절에는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2장 10절에는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6장 20절에는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6장 21절에는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속담에 불붙는 집에는 키질도 안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보통에는 가만히 있다가 분쟁이 생기면 갑자기 분주해 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쟁을 가져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는 형제가 서로 분쟁하면 마귀가 좋아합니다.
야고보서 3장 16절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계를 하다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 후로 신자들은 서로 보지도 않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 부흥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귀가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초장이나 시냇물을 발견하면 서로 양떼를 먹이려고 다툼이 잦아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스럽게 문제를 해결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행해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 우리가 서로 다투지 말자고 말합니다.
성도가 싸우면 세상이 비웃게 됩니다.
한국 교회에 신학자도 필요합니다. 목회자도 필요합니다. 평신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화평케 하는 자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포스트실바니아 지역에서 남북이 대치하며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군은 노예 해방을 주장하였고, 남군은 목화밭이 많았던 고로 노예해방을 반대하면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전쟁을 하다가 어느 날 북군 군인이 저녁 노을이 질 때에 성조기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이 노래 소리가 남군의 진으로 메아리쳐 들렸습니다.
남군도 지지 않으려고 딕시랜드 노래를 힘껏 불렀습니다. 때 아닌 노래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북군과 남군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30-40분이 지났을 때 북군이 “홈 스위트 홈”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병사들은 두고 온 가족과 집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남군과 북군이 모두 다 한목소리로 그 노래를 합창하며 함께 불렀습니다.
양쪽의 지휘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여 24시간 동안 휴전을 약속하고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였습니다. 노래 한 곡이 잠시나마 전쟁을 평화스럽게 하였던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 분쟁하면 다른 나라가 좋아합니다.
하루속히 남북이 화해하고 용서하여 평화통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3. 모든 사람간의 평화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믿는 형제들끼리 화평을 이루었다면 이제는 모든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는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인은 형제간에도 화평해야 하며 나아가서 모든 사람을 대하여도 화평해야 합니다.
주안에서 온전한 화평을 얻은 성도들이 은혜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은혜스럽고 영광스러우며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것처럼 원수까지 용서할 때에 비로소 복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3장 10-11절에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원수가 주릴 때에 먹이고 목마를 때에 마시우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상관없이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 화평케 하는 자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화해자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 오셔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으셨습니다.
낮고 천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으며 죄인이 아니면서도 죄인의 자리인 십자가에 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무덤에 내려가셔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겸손한 자리에까지 가셔서 화해의 진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둘째, 화평케 하는 자는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화를 내도 유순하게 대답하면 분노를 가라앉히게 됩니다.
자동차는 무쇠덩어리이지만 윤활유가 마찰 부분을 부드럽게 해주면 잘 돌아갑니다.
얇은 종이와 종이 사이에도 부드러운 풀이 있어야 잘 붙습니다.
중간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윤활유나 풀과 같은 온유한 마음으로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분쟁이 있는 곳마다 들어가서 중재자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화평케 하는 자는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즉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케도니아의 안티오커스가 전쟁 중에 자기 막사 안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군인들이 안에 왕이 있는 줄도 모르고 흉을 보았습니다. 듣기가 거북해진 안티오커스가 천막을 들추고서 “듣기가 거북하니 멀리 가서 흉을 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참을성이 있고 여유가 있습니까?
관용이란 강자가 베푸는 것입니다.
약자는 관용이 없습니다. 어른과 어린이가 싸우면 어른이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관용의 사람이 되어 화평케 하는 자가 됩시다.

넷째, 화평케 하는 자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이지만 성격이 급했습니다.
2차전도 여행 때 마가의 문제로 인해서 바나바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끝까지 마가를 용납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로 인해서 바나바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를 용납하고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를 데리고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로 마가는 아주 유용한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분쟁하는 사람은 당을 짓고 수군거리며 교만합니다.
교회의 말썽도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는 어떤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화평케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습니까?
평화를 일구어 나가는 사람입니다. 기꺼이 평화를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는 자입니다.
사람에게 손해를 볼 때가 있어도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과의 화평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사이에도 화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21세기는 “평화 운동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6-17세기에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진리를 새롭게 하는 세기였습니다.
18-19세기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선교한 “선교 운동의 세기”였습니다.
지금은 믿는 사람들이 주안에서 하나 되어 교회들이 서로 연합하고 하나가 되어서 화평한 가운데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회개하기 전의 어거스틴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당장은 마시옵소서”라고 하였답니다.
지금도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없으십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가 먼저 화평케 되면 마음속에서도 화평이 오고 이웃과도 화평하게 됩니다.
화평의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화평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7-18절에 이렇게 권유합니다.
“오직 위에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이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화평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수고한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오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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