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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며" 출12:1-11 070713
글쓴이 : 김근중     날짜 : 07-10-06 07:42     조회 : 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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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며" 출12:1-11
 “떠나며 삽시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1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본토 아비 집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여년동안 살던 애굽 땅을 떠났습니다. 출애굽이란 말을 영어로 exodus 라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은 탈출한다 또는 떠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의 생애를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세상을 떠날 것에 대해서 자주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요13: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실 쌔”(눅9:31). 여기 별세란 말의 원어는 exodus 인데 출애굽한다 또는 떠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을 떠나고 몸을 떠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8).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4:6).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입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이상현 박사는 기독교 신앙의 특성의 하나는 주변성이라고 했습니다. 주변성이란 중심에서 쫓겨나고 중심에서 밀려난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밀려나서 갈릴리에서 살고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사마리아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삶을 강요된 주변성을 지니고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강요된 주변성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 즉 흩어진 사람들(디아스포라)과 나그네 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발적이든지 강요를 당하든지 고향을 떠나 나그네가 되고, 애굽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떠나 가난하고 약하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입니다.

2 떠남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떠난다는 것은 부정하는 것을 말하고 죽는 것을 말하는데,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떠나는 종교요 죽는 종교입니다. 고향을 떠나는 종교요 고향에 대해서 죽는 종교입니다. 애굽을 떠나는 종교요 애굽에 대해서 죽는 종교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종교요 세상에 대해서 죽는 종교입니다. 몸을 떠나는 종교요 몸에 대해서 죽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는 기독교의 신앙은 별세의 신앙이요 죽는 신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별세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본질이요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별세시키려고 택하셨는데 결국 그들은 별세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별세하기 위하여 믿고 별세의 삶을 살다가 영원한 별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 십자가의 죽음에서 자기 죽음을 선언한 바울의 신앙이 나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기 죽음의 신학은 저의 별세 신학이 되었습니다.”
애굽을 떠난 출애굽 사건의 중심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대해서 죽는 것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어린양들을 잡아서 죽여야 했습니다. 자기들이 죽는 대신 어린양을 잡아서 죽여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별세 사건의 중심에도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건이 예수님의 별세 사건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의 순종의 삶의 중심에도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모리아 산 위에서 이삭을 잡아 죽이려는 순간 아브라함은 사실은 자신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주님만을 따랐던 사도 바울의 생애의 중심에도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고후4:1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갈2:20).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요 죽음의 종교입니다.

3 떠나면 중심에 서고 죽으면 생명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요 죽음의 종교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역설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논리를 뛰어 넘고 실용주의를 초월하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쫓겨나고 밀려나서 떠나면 망할 것 같은데 사실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이 쫓겨나고 밀려나서 황무지와 산지에 유리 방황했지만 어느덧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박해를 받아서 쫓겨나고 밀려나서 고향을 떠났는데 얼마 후에는 그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도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부에 순종하여 고향과 세상을 떠나 주변성을 지니고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성공한 것입니다. 의로운 죽음은 자기 자신을 생명에 이르게 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4:11,12). 바울의 죽음은 바울을 생명에 이르게 했을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을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의로운 죽음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을 생명에 이르게 했을 뿐 아니라 수 많은 다른 사람들도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1956년 1월 고향인 미국을 떠나 남미 에쿠아돌 깊은 산지에 들어가 아우카스(Aucas)라는 야만족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이 던진 창에 찔려 죽임을 당한 Nate Saint, Jim Elliot, Ed McCully, Rodger Youderian, Pete Fleming 등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들의 죽음은 그들을 영광의 생명에 이르게 했을 뿐 아니라 수 많은 아우카스 부족들을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지금 아우카스 부족이 사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수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요 죽음의 종교이지만 실상은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종교요 생명의 중심에 서 있는 종교입니다. 떠나면 중심에 서게 되고 죽으면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났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세상적인 가치관과 습관에서 떠나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이산가족이 된 것이 슬프고 아픈 일이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에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이기적이 되었고 배타적이 되었고 탐욕적이 되었습니다. 너무 자기 중심적이 되었고 너무 물질 중심적이 되었고 너무 세상 중심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관과 습관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서울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비친척집을 떠나라고 명하시면 아비친척집을 떠나냐 하고 애굽을 떠나라고 명하시면 애굽을 떠나야 하고 세상을 떠나라고 명하시면 세상을 떠나야 하고 몸을 떠나라고 명하시면 몸을 떠나냐 합니다. 진정한 떠남의 중심에는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붙잡으며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으며 우리의 정과 욕심이 죽어야 합니다. 이제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으면서 우리도 떠남과 죽음의 삶을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떠남이 중심에 서는 길이고 죽음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바울처럼 주님 안에서 죽게 하시옵소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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