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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와서 마셔라 ( 요7;37~39)
글쓴이 : 김근중     날짜 : 19-04-02 10:10     조회 :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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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대화 중에 특별히 강조해야할 중요한 말이 있으면 그 부분에 힘을 줘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본문 37절에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said in a loud voice)”라고 하였다. 여기서 명절이란 요한복음 7장 2절에 보면 ‘초막절’이다. 그러니까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아주 큰 소리로 외치면서 선포하신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신 내용이 뭔가? 37-38절을 보라.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said in a loud voice)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39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7-39절)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주님께 와서 마시라’고 외치셨다. 여기서의 목마름은 단순한 갈증이 아니라, 영적인 갈급함을 말한다.

 

그러면 우리들이 왜 주님께 가서 생수를 마셔야 하는가? 요한복음 4장 14절에 보면 그 이유를 기록하고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이 말씀에서 보듯이 주님이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39절에 보면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 샘물이 바로 성령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39절 끝부분의 괄호 안에 있는 말씀처럼 아직 고난받기 전이었고, 이 말씀은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한치의 오차없이 성취되었다. 특별히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다. 기독교의 절기 중에서 그 중요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비교적 관심을 덜 받는 절기 중의 하나가 성령강림주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고난 받으시기 전에 미리 성령강림이 우리들에게 주는 그 중요한 의의를 말해주셨다.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강림의 중요한 의미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8절)”는 말씀에서 깨달을 수 있다. “그 배에서”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성령님이 우리 안에(in) 들어오신다는 뜻이 있다. "나를 믿는 자는“이라는 말씀은 모든 믿는 성도들을 뜻한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께서 특정한 사역을 위해 특정한 사역자들에게 임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은 주님을 “믿는 자” 사람들 모두의 속에 친히 들어오셨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內住)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처럼 사역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역은 어떤 것인가? 주님의 사역에 수 많은 기록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말씀은 복음의 원형 즉 케리그마(Kerygma)라고 불리우는 사도행전 10장 38절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또한 사도행전 2장 33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님께 부어주신 성령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한량없이 주셨던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행2:33)

 

그런데 예수님에게 부어주셨던 성령과 능력의 기름부름을 오순절 이후에는 믿는 모든 성도들 안에 부어주셔서 주님을 대신해서 주님의 복음사역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제어하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는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나에게 주시는 중요한 의미이자, 성령받은 성도들의 중요한 사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38절에서 “강(江)”이라는 말과 “흘러나리라”는 말씀을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는 말은 곧 성령의 충만함이 강물처럼 흘러넘친다는 말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다스리고 지배하실 때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상태인데, 이것을 언급하신 말씀이 바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충만과 재충만을 계속해서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믿는 자는 이미 그 속에 성령님이 계신데, 왜 또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다.그러나 우리들이 성령의 충만 또는 재충만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다른 또 다른 어떤 영을 새롭게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위로부터 예수님이 보내주시는 진리의 성령의 능력을 계속 공급받아서 강물이 넘치는 상태와 같이 되어야한다는 말이다.

 

주님도 사역하시는 동안 하나님이 보내시는 성령을 한량없이 공급받으셨고, 공급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들에게도 한량없이 부어주신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이것은 마치 욕조에 물을 채우는 것과도 같다. 욕조 안에 물이 있지만, 욕조에 물이 넘치는 것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공급될 때 넘친다. 이것을 좀 더 확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언급한 말씀처럼 강물이라고 생각해 보라.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었을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적인 물줄기가 생겼다.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의 강(또는 그릇, 저수지)에 성령의 생수가 어느 정도는 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성령의 내주 상태다.

 

그런데 내 심령의 강에 물이 넘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저 멀리 수원지로 부터 계속적으로 물이 흘러 들어와야 한다. 만약 계속적으로 물을 공급받지 않는다면, 결국 강이나 저수지의 밑바닥이 드러나서 나중에는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수원지로부터 물이 지속적으로 넉넉하게 공급되면 강물이나 저수지 주변의 논과 나무와 모든 것들이 아주 건실하게 열매 맺게 된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의 심령도 유사하다. 생명의 물의 근원지가 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계속적으로 받을 때, 우리 심령에 생수가 넉넉하게 넘쳐 흐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이다. 이렇게 될 때 강 좌우편의 나무들도 살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나를 통해서 주변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게 되고, 생명의 물을 그들도 마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사역들을 잘 감당하는 비결이다. 그러나 반대로 심령의 바닥에 성령의 생수가 마르면 그 반대의 상황이 되고 만다.


이처럼 성령의 생수의 강물이 내 속에서 넘칠 정도로 충만하게 되면, 내 속이지만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강물 속에 몸이 잠기면 내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나의 영혼을 완전히 감싸고, 나를 지배하시면 세상적인 정욕과 욕심을 추구했던 내 행동이 자유롭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과 철저한 자기부인의 상태가 서로 통하는 부분이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다 같이 함께 읽자.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위하여 제 목숨까지 드리는 삶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자기 목숨을 유지하는 일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려는 얄팍한 영적인 노림수를 부리는 태도는 ‘자기부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철저한 자기부인이 가능한가? 지식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말씀 앞에서 고개만 끄덕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 속에 성령충만 즉 성령님이 창일한 강물과 같이 다스리실 때 가능하다. 엄밀하게 말하며 성령의 강물 속에 완전히 잠기면 나를 부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성령님이 나로 하여금 자기부인을 하게 만드신다. 그렇기에 성령충만은 곧 자기부인의 길이요, 성령충만은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이요,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제자의 길을 가는 영적인 원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성령의 생수의 강이 넘치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다. 다시 한 번 38-39절을 보라. 누구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가?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8-39절)


바로 ‘믿는 자’다. 주님은 주님을 믿는 자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 하셨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처럼 성령충만도 믿음으로 받는다.

 

그런데 누가복음11장 13절에서 주님은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면서 이런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이 말씀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다. 이 두 말씀을 합해보면,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은 곧 욕조의 수도꼭지를 여는 것과 같고, 수원지와 저수지 사이에 수로가 형통한 것과 같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던 주님은 지금도 이 시간에도 우리 심령을 향해서 외치신다. 그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은혜에 목마른가?(아멘!) 그렇다면 주님께 ‘예! 주님 저는 주님이 넘치도록 주시는 생수를 마시기 원합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물 속에 잠기기 원합니다!’라고 반응하자. 이렇게 함으로서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이 맡기신 십자가의 사역들을 성령의 힘으로 감당하자. 내 주변에 사해와 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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