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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자유 요8:31-41
글쓴이 : 김근중     날짜 : 19-02-20 12:54     조회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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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3.15천안 병천태생, 1916. 3.5 이화학당 보통과 입학, 1919. 3 이화학당 고등과 입학,1919. 3.1 3.1독립만세운동 참가, 1919. 4.1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일본헌병에게 체포, 3년형 구속, 1919. 8.1 서대문형무소로 이감 (법정모독 가중죄로 7년형)

1920.10.12 수감중 옥중에서 일본인의 고문으로 순국, 1962. 3. 1 그의 장엄한 죽음을 기리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추서. 지금부터 90년전 삼일독립만세운동을 하다 당시 19세의 나이로 옥중 순교한 유관순의 생애였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인과 뗄수 없는 삼일절 기념주일이요 내일은 3.1운동이 일어난지 9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왜 맨손 맨주먹으로 일본의 총과 칼에 비폭력으로 맞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만큼 나설 수 밖에 없었을까요? 가까이 보면 1876년 강화도에서 불평등조약을 체결케 한후 1904한일의정서 교환 이때부터 땅과 인력을 강제로 앗아가기 시작했고 1905년 을사늑약을 만들어 외무대신 이등박문으로 하여금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으려고 고종을 위협한후 국내관리들을 매수합니다. 그러면서 명분은 우리나라를 보호해준다는 거짓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것은 결국 1910년 한일강제합병을 가져왔고 이때부터 완전히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국토, 주권, 말등은 물론 곡물, 노동등을 착취 당합니다.

이에 1919.3.1 전국적으로 봇물 터지듯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참가 인원수 202만 3,089명이었고 피해당한 숫자로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검거된자 5만 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나 되었습니다. (일본측 발표)

이러한 만세운동에 하나되어 주도한 분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1,600만명중 기독교인은 1.5%인 20만명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의 영향력이 지대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움과 함께 한편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전후 서독에서는 '연방보상법'이 제정되었는데 이는 유대인 희생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1991년 1월까지 유대인 희생자에게 지급된 독일의 보상액은 864억 마르크(약 69조원)였습니다, 더 나아가 2030년까지 지급될 액수가 1,200억 마르크(약 9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반면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지급한 전후 보상액은 총계 3조6,400억 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액수는 참고로 일본(4조5713억달러)의 경제규모가 2005년 기준으로 독일(2조7973억달러)의 거의 2배 가까이 되지만, 전후 전쟁으로 인한 보상액은 1/20의 수준입니다.

이 뿐 아닙니다. 계속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문제에 대해 자기 땅이라고 생떼를 쓰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나 교과서에까지 표기하여우리민족을 자극하는 것은 아직도 그들이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2차대전의 같은 전범이면서도 약 1천만에 가까운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인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수상이 직접 유대인들에게 사죄를 했습니다.

그 예로 1970년 당시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브란트수상(1913-1992) 그는 히틀러 나치정권에 의해 유대인이 50만명 가량으로 가장 많이 학살된 곳으로 알려진 폴란드 바르샤바의 홀로코스트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구했습니다. 이듬해 197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아래 그림)

또한 1984-1994년까지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우는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 그가 재임하던 1990년 당시 동독과 서독이 독일로 통일을 이루는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95년 8월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진심으로 하는 사과만이 피해를 입은 이웃국가들에게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일본이 과거문제 청산에 좀 더 성실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일본이 과거청산의 문제를 적어도 기본 입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의 연설문중 일부내용을 소개합니다.(Welt,95.8.8)

‘독일에서는 12년간의 나찌시대가 하나의 역사적 단절로 이해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과거의 사실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연속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적 연속성이란 과거 일본의 군사적 행동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본사회의 내적구조와 일본의 정치가 과거와 다름없는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일본 사회는 과거 30년, 40년대의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전통종교, 천황제도, 그리고 국가제도 등도 과거의 것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에게 사과를 하거나 사죄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중략) 이때의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라야만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히틀러 나치정권이 어떻게 했길래 그랬을까요? 그 잔악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콜레라를 막기 위해선 쥐떼들을 죽여야 한다.’ 이는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치의 전범 히틀러가 한 말입니다. 여기서 말한 콜레라란 유태인이나 집시 등이 순수한 독일계통의 혈통보존을 해치는 암(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며, 쥐떼는 유태인을 두고 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태인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최후의 한 사람이라도 남기지 말고 멸종시키고자 하였던 2차 대전의 전범 히틀러와 나치정권의 극악무도한 실상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대인 대학살을 다른 말로 홀로코스트라고 하는데, 홀로 코스트(Holocaust)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합니다. 이것이 고유명사로 쓰여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독일 국회에서 연설한 내용에서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동일한 죄르르 지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양심을 꺼리고 책임을 외면하며 회피하고 침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쟁이 종결되어 홀로코스트라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진실이 모두 밝혀졌을 때, 우리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고 혹은 단지 짐작만 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민족 전체의 유죄 혹은 무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가 있다면 무죄와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죄 가운데는 밝혀진 것도 있고 여전히 숨겨진 것도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자백한 죄도 있고 부인한 죄도 있습니다. 그 시기를 온전한 의식을 갖고 지낸 사람이라면 오늘날 조용히 스스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물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기억하고 있고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 없는 화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수백만 명 씩 죽어간 그 경험이 이 세상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내면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처참함을 인간이 도저히 잊을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억은 유대인의 믿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망각(忘却)은 유랑(流浪)을 연장시키고, 구원(救援)의 비밀(秘密)은 기억이다. 자주 인용되는 이 유대교 가르침은 아마도 신을 믿는 것은 역사(歷史)에서 신이 역사(役事)하심을 믿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정치적 책임을 떠맡아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 당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책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이 역사에 작용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통일될 무렵 폰 바이체커 독일의 전대통령은 “과거에 눈감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눈멀게 된다. 비인간성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자는 새로운 감염의 위험에 처해지기 쉽다.” 귀담아 새기고 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라’ 이것이 홀로코스트의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수치스런 과거를 잊으면 또 다시 종살이, 노예살이, 아니 정치, 경제, 문화, 종교등 식민지화를 강요하는 강한 세력앞에 고통스런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았던 깨어 있고 의식있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일제 만행을 규탄한 것입니다.

1919년 3월 21일 삼일만세 사건으로 잡혀가면서 33인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도 않았고 이름도 빛도 없는 무명의 용사들이지만 역사의 뒤안길에서 처절한 압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한국인이었기에, 그리고 기독교인 이었기에 그 수난을 감당해야만 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갖은 고난을 당했던 것처럼 인간으로 당하기 힘든 여러가지 박해를 당하면서도 민족의 독립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으며, 그중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한 기독교 여신도의 진술입니다.

"나는 평양에서 3월 2일에 체포되었다. 감옥에는 여자들도 여럿 있었고 남자들도 많이 있었다. 경관들은 삼일 운동의 이유보다도 우리가 기독교인인가를 가장 자세하게 묻고 따졌다.

내가 들어간 감방에는 열두 명의 감리교 여자들과 두 명의 장로교 여자 및 한 명의 천도교 여자가 있었다. 감리교 여자중 세 사람은 전도부인이었다. 그런데 일본 경관들은 채찍으로 우리 여자들을 내리치면서 옷을 다 벗기고 벌거숭이로 여러 남자들 앞에 세워 놓았다.

그들은 나에 대해서는 길거리에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과 내가 기독교인 이라는 죄목밖에는 찾지 못했다. 그들은 내 몸을 마구 돌아가면서 때렸다. 그리고는 양손을 뒤로 해서 꽁꽁 묶고 옷을 벗기고 다시 또 때렸다. 전신에 땀이 흐르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찬물을 끼얹어졌다. 춥다고 말하니까 이번엔 담배불로 내 살을 지졌다.

우리는 성경책을 다 빼앗기고 기도는 고사하고 서로 말도 못하게 했다. 사람으로는 견딜 수 없는 무서운 욕설과 조롱을 받았다.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동계올림픽 스케이트에서 금메달 딴 김연화는 이미 그의 명서은 세계에 알려졌으니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주의 이름을 높인다는 말 하면 금상첨화의 금메달감 일텐데 실력은 금메달이었으나 신앙은 글쎄요.

해설하던 제갈성렬은 평소 스포츠를 통해 복음전파와 기독교문화 확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평소 꿈이 있었습니다. 우리주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한 말에 발끈한 네티즌들 특히 모방송의 압력등을 스스로 사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금메달이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식을 가진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렵니까? 기독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영적무장을 하고 있어야 할 여러분을 어떤 이유로든 무장해제시켜 벌거숭이가 되게 하여 조롱거리를 삼으려는 사단의 유혹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이러한 역사의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 주신 진리의 소중함을 자유라는 이름하에 상실하지 않도록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진리입니까? 자유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자유입니까? 생명입니까? 자유입니까? 즉 자유를 얻기 위해 진리를 버리거나 외면하면, 예수님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개인적으로 인생의 깊은 밤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한 민족도 캄캄한 암흑기, 즉 또 다시 식민지로 돌아갈 위험이 어느 민족이든지간에 도사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개개인의 자유는 소중한 것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법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함만을 주장한 나머지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정없이 짓밟혀지고 있고 내동이쳐지고 있을 그 때에도 여러분은 당장 내 자유만을 움켜쥐며 사는 일에만 인생을 투자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진리와 자유를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대상들은 말씀을 믿고 따른다고 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31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이다” 한 다음 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진리가 36절에 보면 예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 말씀 듣고 있던 이들이 질문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고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자유케 되리라고 말씀합니까?(33절) 그것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은 맞다. 문제는 너희 속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고 나는 아버지를 본 것을 말하고 있는데 반해 너희는 아브라함에게 들은 것을 행하되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도 그렇게 행하지를 않고 있다라고 말씀 합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합병된 지 100년이 넘었고, 그리고 3.1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 되는 해를 맞는 오늘 내안에 있어야 할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강조하며 거듭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내 말이 거해야 참 제자이다. 그래야 자유하리라.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면 자유하리라. 자유가 여러분을 진리되게 하는 유혹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내게 좋은 것이면 그만이다’ 라는 인본주의에 속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편법으로 믿는 모난 신앙이 진리되게 하여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따라서 ‘거한다’는 뜻은 예수님이 진리되어 여러분 안에 거하되 들쑥 날쑥, 있다 말다 하는 것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계속적으로 변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이 진리라야 여러분이 삽니다. 그 진리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여러분의 온 몸과 마음과 생각이 채워져 지배되어야 비로소 그때부터 자유합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 또한 여러분에게 자유라고 여기는 것이 진리되신 예수님의 자리를 꿰차 들어와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삼일절 기념주일을 맞는 이 시간 다시는 어두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리되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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