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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빌1;12~14,19~30
글쓴이 : 김근중     날짜 : 19-01-09 10:33     조회 :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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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십니까?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생의 시작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생의 계속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 앞에서 살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상급이요 삶의 전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생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생의 마지막 코스가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에게 있어 삶의 시작이 그리스도요, 현재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생의 마지막 또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인생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바울에게서 그리스도를 빼버린다면 그의 생애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의 이유와 목적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는 좀더 높은 지위를 얻고 좀더 많은 부를 축적하여 안락한 삶을 누리는 데 삶의 목적을 두고 곤고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인생들도 있습니다.

또 더러는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도 없이 무작정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사도 바울의 진솔한 자기 고백을 통하여 성도들이 지녀야 할 참되고 온전한 인생관을 일깨워 줍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기를 생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를 갈망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실로 값진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은 본문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의 모습과 그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 함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시 중생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나의 주로 모시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할 때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신자의 영원한 사랑의 연합을 이름입니다.

이에 성경은 요한복음 14장 20절로 21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자는 그의 사후에도 그리스도께서 버리지 않을 것을 확연히 보증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로마서 8장 35절 이하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이 사실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 이나 장래일 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꾾을 수 없으리라”

이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 함은 내게는 사는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요, 생의 목적도 생의 의의도 오직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내 몸에서 존귀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려면 자기 몸을 성결토록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육체와 싸워 이겨야 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달려갈 길을 다 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을 지켜야 하며 어떻든지 자기 생활을 근엄히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몸을 성결케 하여 자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므로 그리스도를 존귀히 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기 위해 이 복음을 세계만방으로 전하기에 온 힘을 기울임으로 자기 스스로 산 제사 제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제 1․2․3차 전도여행 때 바다의 위험도 만났습니다.

환난과 고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의 전부를 바친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는 다짐은 삶의 목적을 분명히 예수에게 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일이라면 내가 어떤 수모를 겪든지 고생하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요 행복이요 전부이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삶의 가치 기준이 그리스도의 존귀함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비판하든지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에 성경은 로마서 14장 7절로 8절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가 없도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함이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내게 구원을 이루었고 우리는 사는 목적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위하여 죽는 그 목적을 바로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위하여 살 대상, 곧 살아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살아야 할 목표가 있고, 살아야 할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명은 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인생의 높은 목표나 이념이나 가치를 말합니다.

인생의 최고의 과제는 사명을 아는 일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에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 15절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 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 우리의 고민은 사는 것은 주를 위할 수 있지만 죽는 것은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공은 주를 위하는 것으로 알고 실패는 주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로나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려는 신앙은 모든 것이 다 성공이요 축복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성공도 실패도 주를 위하여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수단과 목적도 다 예수를 위하여 살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수단과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합니다.

즉, 오늘 말씀 속에는 생명관과 생사관의 목적도 있고 수단도 있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라 함은 “나의 삶에서”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제일로 높이고 싶고 위대하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성경은 분명히 크리스천의 삶은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 삶의 목적으로서의 예수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기쁘시게 함이란 무엇입니까?

예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예수의 뜻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분명히 밝히기를 하나님이 구원키로 작정된 자를 하나도 잃거나 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했습니다(요 6:37-39).

그는 이 일을 위하여 세상에 오고 죽는 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은 “너희는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되고 주의 백성된 자들이 주 뜻 안에서 성도가 되면 세상에는 끝이 오고, 영원한 새 왕국의 통치가 시작된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목적으로서의 예수!

수단으로써의 우리의 삶!

이것은 사실상 신앙과 행위의 진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바른 목적이 없다는 말은 바로 말해서 삶의 가치나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삶에는 고상한 수단으로써의 삶이 전개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고 목적이 수단이 됨은 하나님의 우주 질서 구원 질서를 파괴하는 죄가 됩니다.

용도의 목적을 상실 당한 물건은 폐기 처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에겐 하나님의 불 심판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참된 삶이란 목적적 필연성에 있습니다.

곧 예수를 위하여 사는 데 있는 것입니다.

3. 사는 목적이 예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이 말은 자기 삶의 주체가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정확한 표현에 대하여 성경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즉, 바울은 삶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인생의 새 시작이었고(다메섹 도상),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인생의 진행(계속)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인생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그 인생의 인생된 동기였고, 목적이었고, 가치였고, 의미였고, 생각이었고, 이상이었고, 전부였다는 말입니다.

목적이란 말의 의미는 보통 명사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실현하거나 또는 도달하려는 목표를 뜻합니다.심리학적 의미로는 행위에 앞서는 의지(意志)를 뜻합니다.철학적 의미로는 의지에 의하여 그 실현을 요구하며 행위의 목표를 뜻합니다. 이러한 일반적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인간의 목적이란 분명히 행동에 앞서 있는 것, 형이하학적이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것, 정신적이요 영적인 것, 일시적이 아니고 영원한 것,가 아닌 미래적인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형상의 본질은 원상(原象)인데 이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죄로 인하여 이것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것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바울 속에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삶의 주체가되고 있다는 말입니다.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생의 인생된 중량이요 가치요 명예라는 뜻입니다. 이에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벧전 4:1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이라”(고전 12:13)

그래서 바울은 인생 목적으로서 예수, 사는 것도 예수, 죽는 것도 예수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꼭 같은 목적인 것입니다.

4.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는 삶인 것입니다.

“부끄럽지 아니하고란 말에는 “실패하지 않고”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고”라는 뜻도 있습니다.

바울은 만사에 부끄럽지 않고 사는 생애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양심대로 살아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깨끗이 살아야 합니다.

물질에 욕심 내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 신분대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선을 행하며, 범사에 덕을 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과 신념에 차서 올바른 인생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에 수치(羞恥)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기 시작했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범죄 결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기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롬 10:11)

이상의 성경 말씀을 종합해 보면 복음을 믿어 소망을 가지는 자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한편 바울은 자기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딤후 1:8)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딤후 1:12)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키거나 도덕질 하다가 옥에 갇히었으면 부끄러운 터이지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투옥되었으니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오히려 자랑거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살아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든지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되게 하든지 여하간 바울은 자기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만을 위해 일편단심 충성을 바쳐 자기의 미천한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귀히 되어 영광을 받는 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소망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앞에 나오기 전에는 예수를 핍박하던 자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멸시하고 말살하려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저를 사랑해 주시고․불러 주시고․용납해 주시고․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시고․구원과 영생을 주시고․복음의 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특별한 은혜를 생각할 때 감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든지 살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함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했고․복음을 반대했고․그리스도를 핍박했고․하나님께 반역했고․이런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를 사랑하사 택하시고․불러 주시고․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십자가에서 피흘려 우리를 죄에서 사서 자유함을 주시고․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셨으니 이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바울과 같이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함을 받고 영광을 받도록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없어져야 합니다.성령의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환난과 핍박의 시련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희생과 봉사로써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게 해야 합니다.

역경에서 좌절되지 않고 성공했을 때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어떤 장소에서든지 그리스도의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소자 하나라도 사랑하고 약자들을 사랑하고 형제애를 진정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사는 것도 행복하고 죽는 것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행복이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바울은 매맞고․옥중에 갇히고․사슬에 매이고․고난을 당해도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남 이후 너무나 많은 것을 얻고․누리고․행복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나 죽으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인생 전체가 행복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현재에 초연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는 것일지라도 울면서 죽거나 이를 갈면서 죽는 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순교란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죽음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스테반 집사의 순교하는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평화로웠습니다.

성경은 그의 최후를 잠들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요한 사도의 기록대로 주님을 섬기다가 죽은 자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업적이 언제나 남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바울의 신앙에 이르도록 힘쓰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허탄한 생각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땅만 바라보던 눈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돌려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모든 소망을 살아야 합니다.

살아도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고, 죽어도 그 행복으로 잠들 수 있는 경지는 그리스도와 일체를 이룬 신앙인의 최대 축복일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요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는 성도들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요 영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도 성령의 지배를 하는 신령한 성도가 있고, 마음은 원이지만 육의 소욕을 따라 사는 육신에 속한 성도가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성도를 육신에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다만 죽어서 그 영혼이 주께로 갑니다.

그러나 신령한 성도는 살아서 성령의 지배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삽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요 주께 영광을 돌립니다.

살아도 주님 뜻대로 살고 죽어도 주님 뜻대로 죽는 신령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나 죽으나 오직 예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행 20:24)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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