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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자!(시편 73:16-17)
이름
김근중
힛트
1957
분류
주일낮
날짜
2010·06·25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자!(시편 73:16-17)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삽의 시’입니다.
시편에 나타난 아삽의 시는 모두 12편으로 50편과 73편부터 83편까지입니다.
아삽은 다윗 시대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송하는 악사들의 대장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찬양대장의 직분인 것입니다.
그의 네 아들들도 다윗의 24 악대 중 네 악대의 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아삽의 수하에 있었습니다.

한편 아삽의 시의 특징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노래 속에도 하나님 중심 사상과 세상 중심 사상의 중간에 끼어 고민하는 시인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시인은 세상락을 추구하는 악인의 최후를 성전에 들어갈 때에 깨닫게 됩니다.
이에 시인은 그 비참한 최후를 생각하며, 오히려 여호와께 복종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르짖습니다.
“주 밖에는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오늘의 본문 말씀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한 고민과 그 해결에서 나오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의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없는 인생, 곧 악인이 아무리 형통하더라도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가 많은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큰복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성전에 들어갈 때에 깨달았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국난을 만나 조국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의 성소에 찾아 들어간 일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예배하다가 환상을 보고 주님의 소명을 받아 국난을 극복하였습니다.

다윗도 모든 어렵고 인생의 난제들에 직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없어 거의 인생에 미끄러져 넘어질 무렵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깊이 기도하다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얻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 아삽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 해결책을 찾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렇다면 아삽이 하나님의 성전을 찾지 않았던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치 않습니다.
아삽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이었는데, 그것도 책임자인데, 하나님의 성전을 찾지 않았겠습니까?

이에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거의 실족할 뻔하였던 아삽의 고민과 그 해결책, 그리고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 하는 아삽의 찬양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인의 형통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하였습니다.
악인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그들이 재앙을 당하는 일도 없이 풍족하게 잘 사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에 살아 계시고, 그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악인은 당연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히려 악인은 더 건강하고,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아삽은 지금 ‘진정 내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하는 고민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편 시인은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악인들에게 보통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재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에게는 징계의 채찍으로 고난을 주신다고 증거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히 12:6)

이 징계의 채찍이 없으면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 “내버려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 1:24)

계속해서 시인은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부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소득이 자신이 소원하는 만큼만 이루어져도 이 땅 위에서 실패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실패하기를 소원해서 실패하겠습니까?
마음에 소원하는 것만큼만 소득이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삽이 지켜보며 “거의 실족할 뻔하였던” 그 악인들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 큰 소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16장 8절에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소득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 중심”에서는 그것이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 중심”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소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의를 겸한 소득이라야 합니다.
즉, ‘그 소득이 정당한 소득인가?’ 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겸한 소득이 몇 천억원이 넘어가도 아무 소용없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소득으로 인하여 정죄를 당하고, 감옥 생활을 하고, 결국은 다 토해 내어야 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 어려운 “IMF”라는 어려운 경제 난국을 맞이하였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의를 겸하지 못한 소득을 추구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의를 겸한 소득, 정당한 소득을 추구했다면 화려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런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입니다.
약하고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이 됩니다.
원리나 원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자,
힘있는 자,
악한 자의 횡포는 상대방의 형편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남을 희생시킬 수도,
해칠 수도,
모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그곳으로 몰려와 함께 하며,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길에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적지만 악의 형통함에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아삽이 가장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것은 고사하고서라도 그 악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는 데도 아무 탈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이 내려 쳐야 함에도 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실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악인들은 항상 편하고 재물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는 것입니다.
아삽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잠언 13장 22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소득이 많고 재물이 쌓여 간다 해도 그 재물이 그 악인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필요가 있으면, 의인을 위해 그 쌓은 재물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 악인의 형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고 샘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그 형통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성경은 잠언 23장 17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형통은 부러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성도가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결국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일의 결국을(전 12:13)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2. 선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우리의 한정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의 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우리에게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실만이라도 우리가 분명히 믿는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가 확고부동한 신앙의 자리에 서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실족하고 미끄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는 시험이 닥칠 때에,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믿음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옛날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가령 욥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 닥쳤을 때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의 대원칙을 세우고 나갔습니다.
욥은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어려움을 하나님은 아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생각과 이 믿음 자체가 욥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의 의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예레미야 12장 1절 말씀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족해서 때로는 구부러진 길로 갈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시인의 원칙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이 원칙은 흔들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원칙에 따라 살고 이 원칙에 따라 죽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선하신 뜻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는 로마서 11장 33절로 34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한정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한 나라의 형편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언제나 유익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롱펠로우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매우 천천히 돌아갑니다. 그리고 몹시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너무 훌륭하시기 때문에 놀라운 것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이유와 방법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악인의 형통함은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악인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심지어 선한 사람이 겪는 고난도 없고, 타인과 같은 재난도 없는 듯 보입니다.
마치 어떤 특권에 의해 모든 사람이 당해야 하는 고통에서 면제 당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듭니다.
그들은 편하게 살며 즐거움으로 목욕을 합니다.
모든 소득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많이 생깁니다.

그러니 이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해지겠습니까?
저희의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닙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하나님은 있지도 아니하려니와 있다 해도 알지도 못하는 무용지물이다”

한마디로 망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이런 모양을 보며, 어찌 괴로움을 견딜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바른 마음을 가지는 일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 시인 아삽은 고민하다가 결국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가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악인의 형통, 악인의 번영을 보며 마음 속에 심한 갈등을 가졌으나 그의 신앙적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위치를 지키며,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시인은 과연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성소에서 악한 사람의 비참한 경우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에 주님께 기도 드림은 마음에 평화와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증거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번영은 풀의 무성함 같고, 푸른 채소 같아서 쇠잔할 때가 옵니다.
따라서 소나무가 뻗어나가고, 호박덩굴이 번성한다고 부러워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악인의 번영이 이와 같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베어지고, 말라지고 말 것입니다.
저희가 기세를 부리는 것은 잠간이요, 애곡과 비탄은 영원합니다.

따라서 어떤 어려운 일에 직면하더라도 낙심하거나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해야 합니다.
한없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자!(시편 73:16-17) 
이름
김근중
힛트
1958
분류
주일낮
날짜
2010·06·25
내용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자!(시편 73:16-17)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삽의 시’입니다. 시편에 나타난 아삽의 시는 모두 12편으로 50편과 73편부터 83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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